한국인의 잠은 세계에서도 짧은 축에 속한다. 글로벌 기업 필립스(philips)가 세계 수면의 날을 맞이해 올해 전 세계 13개국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글로벌 수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평일 평균 6.7시간, 주말에는 7.4시간으로 세계 평균인 평일 6.9시간, 주말 7.7시간에 비해 현저히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이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을 감안하면, 평균 수면시간은 많은 차이가 나기 힘들다. 예를 들어, 2014년 oecd에서 발표한 세계인의 평균 수면시간 조사에서 독일과 영국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478분으로 비슷하고, 노르웨이(481분), 이탈리아(488분)와 10분 이내로 차이 난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인과 세계인의 평균 수면 시간 사이 존재하는 20분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보여준다.
한국인이 유난히 적게 자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7년 발표된 ‘시간 균형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잠’ 논문에서는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한국인의 긴 노동시간이다.oecd의 조사 결과 한국(연간 노동시간 1,967시간)은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국가 중 하나이며, oecd 평균 보다 한 달 반을 더 일한다. 또한, 영국 코벤트리에 위치한 워릭 대학교(the university of warwick)의 사회 심리학 부교수 스텔라 쳇지테오차리(stella chatzitheochari)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4.55분으로 선진국(33.8분)과 비교해서 20분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비춰 볼 때 한국인의 긴 근무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한국인의 적은 수면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여가시간을 더 갖기 위해 잠을 덜 잔다.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평일 여가시간은 3.7시간이었고 휴일 여가시간은 5.6시간이었다. 또한, oecd 주요 국가의 여가시간 비율 조사에서 한국인의 여가시간 비율은 17.8%로 타 선진국(22%)에 비하면 크게 낮았다. 한국의 사회 구조상 노동시간은 길고, 여가시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또한, 한국은 10시면 모든 공공시설과 식당이 문을 닫는 유럽, 북미 국가들과는 다르게 늦은 시간에도 쇼핑 및 음주 같은 여가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잠을 줄여서라도 여가시간을 가지기 위해 잠을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위 두 가지 가능성 외에도 잠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인식, 일조량이나 열대야와 같은 생물학/자연적 요인 등 있다.
수면 부족은 건강을 해친다문제는 적은 수면 시간이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총 50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153개의 수면 부족과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논문들에 따르면, 수면 부족과 비만, 고혈압, 심혈관 질환, 당뇨 사이에는 큰 연관성이 존재한다. 당뇨의 경우 수면 부족은 혈당 수치 조절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적정 시간 잠을 자지 못한다면 당뇨병에 걸릴 위험에 크다.수면 부족은 백신의 효과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수면 부족이 면역 체계의 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백신 접종이 한창인 지금 제대로 된 면역 체계를 얻기 위해서는 백신을 맞기 전후 충분한 수면은 필수다.미국의 의료전문지 란셋(the lancet)에 기고된 논문은 과거 연구 결과들을 인용해 충분한 수면은 바이러스 특이 적응성 세포 면역을 증가시키며, 백신 접종 후 수면은 바이러스 특이 t형 세포를 2배 이상 증가시켜 숙주 보호 면역에 큰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논문 저자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한 후 아침에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을 제안했다.수면 부족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뿐만 아니라 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인지 기능을 저하 시켜 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 dublin)의 셰인 오마라(dr shane o'mara) 뇌 과학 교수는 수면 부족과 건강은 크게 관련되어 있으며, 며칠간 밤을 새워야만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 1~2시간만 덜 자도 건강에 해가 된다고 밝혔다.